열반경 보살품의 일절을 들어보면, 일천제는 일체의 선근(善根)을 단멸(斷滅)하여 불에 볶은 종자와 같은 것으로 백천만겁을 지나도 결코 보리의 싹이 생기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열반경 범행품(梵行品)에서는 보살은 일천제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 같이 지옥에 태어나겠다고 하였다.
‘일천제가 지옥의 괴로움 속에서 만일 조금이라도 개회(改悔)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명해서 일념의 선근을 생기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일천제의 성불(成佛)의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아사세왕의 귀의와 같이 부처님이 일천제를 위해서까지 법을 설하고 있다는 일절은 일천제에게는 현세에서 선근을 얻은 자의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 각각의 법을 설하더라도 모든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방편으로 구제해서 나가고 여의는 것을 얻는 경문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에 실은 예문은 열반경 광명변조 고귀 덕왕보살품의 일절로서“일천제를 소멸하고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명확하게 일천제의 성불을 말씀하고 있다. 열반경의 취지의 하나가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음을 밝히는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품 중에서 가섭보살(迦葉菩薩)이 “부처님이 설법하고 대열반(大涅槃)의 빛이 일체 중생의 모공에 들어가 중생에게 보리심이 없어도 보리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뜻이 옳지 않다. 만일 사중금(四重禁). 오역(五逆). 일천제의 사람에게도 광명이 몸에 들어가서 보살의 인(因)이 된다고 하면 이런 사람은 참으로 정계(淨戒)를 닦고 있는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하고 의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곧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는 진리의 세계와 현실 차별의 세계와의 갭(gap)을 말하는 것이다. 이치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수도(修道)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차별이 있음은 말 할것도 없는 것이다. 이 두 세계는 말하자면 사(事)와 이(理)의 세계의 관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반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자체도 방편설(方便設)로서 이(理)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이지만, 처음은 수도론상(修道論上)의 입장을 바탕으로 ‘다만 한 사람을 제외한다’고 하여 일천제는 보리의 싹이 없다고 멀리 제쳐 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만 앞으로 논(論)에 이어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설하고 극애일자지(極愛一子地)를 설명, 진행시킨 뒤 여기에서 일천제도 성불할 가능성이 있음을 명시하게끔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발전되어 대비천제(大悲闡提)사상이 생겨난 것이다.
곧 입능가경(入稜伽經) 제 2권 끝에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3의1에는 천제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여 방법천제(謗法闡提)와 대비천제(大悲闡提)를 설명하고 있다.
방법천제란 소위 천제를말한 것인데 이에 대해 대비천제란 보살을 말한 것이다. 보살이 방편(方便)으로 ‘만일 모든 중생이 열반에 들지 않으면 나도 역시 열반에 들지 않겠다.’라든가, 앞의 범행품(梵行品)에서 보았듯이 일천제가 지옥에 떨어지면, 나도 지옥에 태어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입능가경(入稜伽經)에 있어서도 ‘저의 일체 선근을 버린 천제는 만일 모든 부처, 모든 선지식을 만나면 보살핌을 일으켜 여러 선근을 내고 열반을 청하리라(證)’하고 밝혔는데 이것은 그 제불(諸佛), 선지식(善知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대비천제(大悲闡提)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 예문은 보살의 서원이 모든 일천제에게도 깨달음을 얻게끔 서원하고 있는 내용이다.